2026 ACC 미래상: 김영은
구작전시: 김영은의 소리, 그리고 청취의 탐구 여정
세미콜론;이 본 세계의 단위들, 2011.
싱글 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25분 54초
맞춤벽지음악, 2014.
사운드 퍼포먼스 비디오 기록
16분
밝은 소리 A, 2022.
싱글 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16분 56초
붉은 소음의 방문, 2018.
싱글채널 비디오, 스테레오와 바이노럴 사운드
12분 14초.
이번 전시에 이르기까지 김영은의 이전 여정을 들여다보는 공간이다.
‘소리와 기호’ 의 자의성에 대한 탐구를 보여주는 초기 작업 <세미콜론;이 본 세계의 단위들>(2011), 시각적 공간에서 청각적 공간으로의 재정체화를 보여주는 퍼포먼스 <맞춤벽지음악>(2014), 나아가 역사적 맥락으로 확장해 정치적인 산물로서의 소리를 드러내는 <붉은 소음의 방문>(2018), 근대화를 통해 서구적 음악 기준이 정착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밝은 소리 A>(2022)까지, 청각 체계를 중심으로 잊혀진 혹은 듣지 못한 소리의 청취를 통해 구멍난 인류사를 메워가는 작가의 여정을 살펴볼 수 있다.
<세미콜론;이 본 세계의 단위들>
2011
싱글 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25분 54초
〈세미콜론;이 본 세계의 단위들〉 속에는 :(콜론), “ ”(따옴표), -(하이픈), …(말줄임표), ( )(괄호)와 같은, 이름과 형상은 있지만 소리가 없는 12개의 문장부호가 등장한다. 작가는 문장 안에서 특정한 역할과 위치를 갖고 있지만 소리가 나지 않는 이 부호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함으로써 기호의 이미지로부터 상상된 음향적 실체를 끌어낸다. 세미콜론(;)은 모든 이야기의 화자로서 개성을 지닌 하나의 인격체로 살아나며 동료 문장부호들의 심리를 친밀하게 서술한다. 이 서술은 다성적이고 불안정한 목소리로 전해지는데, 대본에 쓰인 한국어 문장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외국어 사용자들의 기능적 내레이션으로 낭독되기 때문이다. 이는 의미 전달의 언어 기능을 차단하고 소리로만 남는 발화를 통해 소리와 기호의 자의성을 강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극의 말미에는 12개의 부호가 등장한 모든 배경이 인물이 빠진 텅 빈 공간으로 차례로 나타나고, 이와 대조적으로 모든 부호들의 합창 소리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맞춤벽지음악>
2014
사운드 퍼포먼스 비디오 기록
16분
이 작품은 거대한 중고 물품 시장이 있는 서울 황학동에 자리한 솔로몬 빌딩에서 진행된 사운드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이다. 황학동 시장은 물건이 쓰임을 다하고 마지막으로 흘러드는 ‘최후의 시장’으로 불렸던 곳이다. 시장에 위치한 솔로몬 빌딩은 외부의 번잡함과는 달리 내부에 진입하면 뜻밖의 시각적 차단을 경험하게 되는 공간이다. 건물 내부에는 과거 점포로 쓰였던 작은 방들이 벽 뒤에 겹겹이 숨겨져 있다. 1층에는 조각 케이크 모양의 방들이 부채꼴 벽 뒤에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엘리베이터는 문과 벽 뒤편을 따라 1층과 6층을 오간다. 6층에는 넓은 중앙 공간을 중심으로 다섯 개의 방이 벽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작가는 시각이 차단된 이 공간이 ‘청각적 공간’으로 새롭게 정체화될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전 작업을 통해 소리가 비가시적 공간의 물리적 정체성과 장소성의 서사를 드러낼 수 있음을 경험한 그는 벽과 목소리를 중심으로 한 사운드 퍼포먼스를 구상하게 된다.
퍼포먼스 방식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연주자들은 서로를 보거나 닿을 수 없는 숨겨진 공간에 각자 위치한 채, 희미하게 들려오는 다른 연주자의 소리와 지휘자의 원격 신호에 의지해 연주를 이어간다. 관객은 연주자의 모습을 볼 수 없으며, 오직 소리를 통해 그들의 위치를 가늠하고, 그들이 머무는 공간을 상상하며 해석하게 된다.
<밝은 소리 A>
2022
싱글 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16분 56초
이 작품은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현대적 악기를 조율할 때 기준이 되는 A(라)음이 440Hz로 자리 잡게 된 역사를 소개하며, 더 ‘밝은 소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청각적 선호에 따라 계속해서 상향 조정된 A음의 변화를 조명한다. 여기에는 밝은 소리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악기 제작자들 간의 경쟁, 소리를 멀리 전달하여 군대의 사기를 높이려는 유럽과 미국의 군악대의 관행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야기 속에서는 기준음 A음이 한국에 도입된 순간이 재구성된다. 한 미국인 선교사가 한국의 대구 지역에 처음 들여온 피아노에 관한 20세기 초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그 운반 과정이 재현된다. 피아노의 도입은 당시 한국인의 청감각 속에 자리 잡은 음에 대한 이론과 성향이 수정되는 중대한 변화의 시발점으로, 전통 음악적 귀가 서양 음악적 귀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청각적 충돌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이러한 재현을 통해 A음을 ‘싣고’ 온 서구식 피아노의 한국 유입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짚어본다.
<붉은 소음의 방문>
2018
싱글채널 비디오, 스테레오와 바이노럴 사운드
12분 14초.
이 작업은 근현대의 시간을 거치며 한국에 존재했던 대조적 성격의 두 가지 소리를 조명한다. 그중 하나는 사이렌 소리이다. 정오 사이렌과 통행금지 사이렌으로 기억되는 이 소리는 식민 시대와 미군정, 전쟁과 독재의 시기를 거치며 낮에는 노동하는 국민의 일상적 리듬을 동기화하기 위해, 밤에는 치안 유지를 위해 작동했다. 이 중 더 강압적인 국가적 시간 규율인 야간통행금지는 개인의 신체적 공간과 시간을 통제하며 36여 년간 존재했다.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에는 현존하는 가장 높은 붉은 벽돌 망루가 서 있는데, 이 망루는 주민 감시를 위해 일제강점기에 세워졌고 해방 이후부터는 사이렌 타워로 기능했다. 특히 이 지역에서 울려 퍼졌던 사이렌 소리는 붉은 망루의 확고한 존재감과 함께 기억되는데, 작업 속 이야기는 이 망루에서 흘러나왔던 사이렌 소리에 대한 주민들의 기억에서 시작되어 점차 통금 사이렌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다른 하나는 라디오 소리였다. 통금 사이렌이 울린 뒤 어둠이 깔리면 숨어 있던 청취자를 불러 모으는 이 소리는 때로는 남과 북 사이를 의도적으로 넘나드는 선전 방송이었고, 때로는 우연히 국경을 넘어온 정규 방송 등의 전파였다. 반공의 시대에 장소적 경계를 흐리는 이 라디오를 듣는 것은 불법적인 일이어서 청취는 언제나 비밀스러운 개인적 차원의 경험이었다. 작품 속에서는 1960년대 후반 간첩 활동을 하며 북쪽에서 남한의 방송을 들었던 어떤 이의 음향적 기억이 서술된다. 이렇게 국경을 넘나드는 라디오 소리는 당시 한 신문에서 ‘붉은 소음’이라 불렸다.
하나의 붉은 소음이 수직으로 내리꽂히며 시간적 통제를 강제하면, 또 하나의 붉은 소음은 수평으로 침투하여 공간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집단적인 청취를 강제하는 사이렌은 개개인의 삶에 억압의 기제로 작동하며 어떠한 흔적을 남겼고, 혼자서 몰래 듣는 라디오는 또 어떤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했을까. 작가는 현실적 지각 영역을 벗어난 이러한 과거의 소리들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사이렌과 라디오 전파에 대한 기억과 당시의 사건을 바탕으로 한 뉴스, 인터뷰, 그리고 에세이에 등장하는 서술을 조사했다. 그리고 이 자료들의 일부에서 발췌·참조한 문장들을 서사적으로 영상 속에 배치했다. 텍스트는 화자와 시공간을 옮겨가며 사이렌과 라디오에 대해 이야기하고, 목소리와 음향효과, 필드 레코딩 등을 통해 재구성된 사이렌과 라디오의 소리가 이야기 흐름에 따라 교차한다.
구작전시: 김영은의 소리, 그리고 청취의 탐구 여정
〈세미콜론;이 본 세계의 단위들〉, 2011.
〈맞춤벽지음악〉, 2014.
〈밝은 소리 A〉, 2022.
〈붉은 소음의 방문〉,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