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CC 미래상: 김영은
신작 리서치 아카이브: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이동하는 소리〉
신작 리서치 아카이브에서는 이번 작품의 제작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다. 공간에 배치된 총 9개의 테이블은 각각 하나의 시(詩), 낭송, 작곡 아카이브를 담고 있다.
작가는 이동과 이주의 경험을 담은 아시아의 시를 추적하고, 현재는 부재한 과거의 낭송 소리를 문헌학적 토대와 전승된 낭독 관행을 바탕으로 추정한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시 관련 리서치 자료와 과거 언어의 번역 및 현대어역, 과거 낭송에 대한 문헌학적 추정, 시 낭송 전통에 관한 조사와 전문가 자문, 그리고 문자로 존재하는 시를 다시 소리로 발화하기 위한 작곡가들과의 협업 과정에서 생성된 다양한 자료를 선별하여 관람객과 공유한다.
「노객부원(老客婦怨)」, 허균, 17세기
조선 중기 문신 허균(許筠, 1569–1618)의 시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제1권 시부(詩部) 「풍악기행(楓嶽紀行)」 편에 실린 칠언고시(七言古詩) 형식의 장편 한시로, 총 48구로 이루어져 있다. 허균이 임진왜란 시기 금강산으로 향하던 중 철원의 객점에서 만난 한 늙은 아낙의 비참한 사연을 담고 있다. 여성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전란과 유랑, 곤궁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의 삶과 회한을 시대상과 연결해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허균, 읊기, 노객부원〉, 라예송
이 곡은 작곡가가 21세기의 독자로서 허균의 시를 접하고 받은 감동에서 출발하며, 이에 대한 화답을 음악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시가 쓰인 시대와 시가 묘사하는 공간 및 정서에 부합하는 음색과 음률을 고려하여 악기를 편성하였다. 허균의 ‘노객부원’에는 전쟁으로 파괴된 한 여성의 삶이 섬세하고 함축적으로 묘사된다. 작곡가는 허균이 전쟁의 참상을 여성 화자의 목소리로 마주하게 함으로써 당대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공감과 성찰을 이끌어냈다고 해석한다. 제한된 한자의 음운 조건 속에서도 생생한 장면을 그려낸 그의 시적 조예와, 민중을 향한 작가적 시선에서 받은 감상을 곡으로 만들었다.
작곡가: 라예송
라예송은 한국 전통음악 교육을 받고 전통악기를 중심으로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이다. 2016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작곡 발표회 〈흰 연기, 너머〉(2017–) 시리즈와 국립현대무용단의 〈검은 돌: 모래의 기억〉(2019) 등의 음악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의 전통을 둘러싼 담론 속에서 그 구조와 의미를 탐색하고 그것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노래: 고진호, 라예송, 배승빈, 이유경, 홍예진
산조가야금: 라예송
퉁소: 고진호
녹음: 김남윤
「[황매화(山吹)]」, 오토모노 야카모치, 7–8세기
「[방인가(防人歌)]」, 하세츠카베노 마마로, 7–8세기
나라 시대 말에 편찬된 일본 최고(最古)의 와카(和歌) 모음집인 『만엽집(萬葉集)』에 수록된 시가이다. 『만엽집』 20권에는 최종 편찬에 관여한 오토모노 야카모치(大伴家持, 718–785)가 수집·정리한 방인가 93수가 실려 있다. 이 단가(短歌)들은 규슈 파견 과정에서 방인과 그 가족들이 지어 부른 노래로, 국가적 동원 체계 속에서 경험한 이별과 이동,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한편, 『만엽집』에는 오토모노 야카모치의 시가들도 다수 수록되어 있다. 그중 아내를 대신해 야카모치가 지은 장가(長歌)는 누이에게 전하는 그리움의 마음을 황매화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위로받은 마음 / 어머니라는 꽃(なぎむ心 / 母とふ花)〉, 켄 우에노
위로받은 마음/어머니라는 꽃(なぎむ心/母とふ花)〉은 모든 소리를 작곡가가 직접 가창해, 유동하는 다성적 음장(音場)으로 펼쳐내는 8성부 보컬 작업이다. 『만엽집』에 실린 시가를 활용한 이 곡은 확장되고 수축되는 보컬 텍스처를 통해 그리움을 그려낸다. 보컬 프라이 는 매미의 울음소리를 연상시키고, 배음창법(倍音唱法) 은 내면의 성찰을 암시하며, 캐논 형식의 음역 상승은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반영한다. 이에 방인가(防人歌, 국경 수비병의 노래)에서 따온 “어머니라는 꽃(母とふ花)”이라는 구절은 포스트루드(postlude) 격인 레퀴엠으로 뒤를 이으며 앞의 시가와 대구를 이룬다. 곡의 음악적 언어는 이제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쇼와(昭和) 시대의 엔카(演歌)를 향하고, 서로 다른 시간의 층위들이 모여 하나의 라피다리움 을 이룬다.
작곡가: 켄 우에노(上野 ケン)
켄 우에노는 베를린상과 로마상을 수상한 작곡가, 연주자, 사운드 아티스트, 연구자로, 세계 유수의 앙상블과의 작업으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2011년 메르츠무지크는 그의 작업을 조명하는 단독 콘서트를 선보였다. 확장 기법의 선구자로 알려진 보컬리스트로서 그는 보스턴 모던 오케스트라 프로젝트, 바르샤바 필하모닉, 태국 필하모닉, 리투아니아 국립 심포니 등의 오케스트라와 자신의 보컬 협주곡을 연주해왔다. 그는 다케후 국제음악 페스티벌의 특별 초청 작곡가로 선정된 바 있으며, 설치 작업으로는 홍콩 아시아소사이어티의 〈다이달로스 드론즈〉와 타이베이 C랩의 〈룸바 캘리그래피〉가 있다. 우에노는 UC 버클리의 교수이며 저술가이자 편집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가창, 녹음, 프로덕션: 켄 우에노
「샤이르 프라후(شئير ڤراهو, 배의 시)」, 함자 판수리, 16–17세기
16세기 말–17세기 초 아체(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북부)를 중심으로 활동한 수피(sufi) 시인 함자 판수리(حمزه فنسوري)의 시편이다. 말레이어 운문 형식인 샤이르(syair)의 초기 발전에 기여한 작품으로, 이슬람 신비주의 전통과 아랍·페르시아 시 전통이 말레이 문학 안에서 융합된 사례로 평가된다. 함자 판수리는 인도 무굴제국, 바그다드 등을 여행했으며, 메카 순례를 다녀온 최초의 동남아시아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시는 배를 인간의 삶에 비유한다. 세속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인간이 올바른 길과 영적 깨달음을 찾아가는 여정을 노래하며, 파도와 폭풍, 돛과 키는 삶의 시련과 수행의 여정을 상징한다.
〈배의 송가〉, 디온 나타라자
이 곡은 함자 판수리의 ‘샤이르 프라후(شئير ڤراهو)’ 한 구절에서 출발한다. 작곡가는 판수리가 그려낸 배, 바다, 파도, 거센 바람의 이미지를 환기하며, 자신의 작곡 재료에서 이에 상응하는 요소를 발견하면서 작업을 전개하였다. 음률은 가믈란 의 전통적 조율을 변형한 것이며, 연주 기법 역시 전통 가믈란 주법에서 출발하지만, 본래 요소들이 희미한 기억의 바다로 녹아들 만큼 새롭게 변주된다. 이 기억의 바다는 판수리 시의 마지막 연에서 음악적 절정에 이르며, 금속 타악기인 겐데르 를 단단한 타봉(打棒)으로 두드리는 강렬한 소리와 함께 막을 내린다.
작곡가: 디온 나타라자
디온 나타라자는 인도네시아 출신의 작곡가이자 연구자로, 현재 UC 버클리에서 작곡 박사 과정을 이수 중이다. 그의 음악적·학술적 작업은 자바 가믈란, 스펙트럴 기법, 악기 제작, 멀티미디어 작곡, 반식민주의 이론이 교차하는 지점에 주목한다. 2022년 원비트 펠로우로 선정되었으며, 그의 음악은 브라운대학교 강의 〈아시아 뮤지컬 모더니즘〉에 소개되었고, MATA 페스티벌, 사운드브리지 페스티벌, PGVIS 심포지엄 〈전통에서 전환으로〉 등 다양한 무대에서 연주되었다. 현재는 족자카르타 기반의 ‘산디칼라 앙상블’과 함께 실험적 기법과 새로운 가믈란 악기를 개발하며 동시대 가믈란 음악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신덴 (목소리): 데스티야 로흐마와티
겐데르: 유스티아완 파라딕마 우마르
겐데르, 술링: 수세노 세티요 위보워
르밥: 무스티카 가리스 스자티
공, 공 크모동: 디온 나타라자
음향 엔지니어: 무함마드 코이루르 로지킨
「도조아강(渡曹娥江)」, 위경, 17세기
명말청초의 시인 위경이 지은 오언고시(五言古詩)로, 그의 호를 딴 사후 편찬 문집 『설옹시집(雪翁詩集)』에 수록되어 있다. 중국 저장성 동부의 조아강을 건너는 여정을 따라 가을 강변의 쓸쓸한 자연 풍경과 나그네의 고단한 심경을 묘사한다. 차가운 강물, 외로운 배, 저녁 산 등의 자연 이미지는 이동의 정취와 내면적 감회를 드러내며, 명 멸망 이후 유민으로 살아간 위경이 경험한 상실과 망향의 정서를 반영한다.
〈조아강을 건너며〉, 첸후이 젠
이 곡은 위경(魏耕, 1614–1662)의 시 ‘도조아강(渡曹娥江)’을 출발점으로 삼아, 광활한 강의 풍경, 흘러가는 구름, 아득한 고향, 갈대, 기러기, 노을에 물든 산, 그리고 은거를 향한 고요한 그리움 등 시 속 풍경과 정서를 소리로 펼쳐낸다. 솔리스트는 시인이자 나그네의 역할을 맡아 망명과 향수, 상상된 은거로 이어지는 시의 풍경에 목소리를 부여한다. 남성 합창단은 다섯 그룹으로 나뉘어 시의 파편화된 음소들로부터 섬세한 사운드스케이프를 형성한다. 합창단은 솔리스트를 둘러싸고 화답하며, 거리감과 유랑, 귀환이라는 시의 이미지와 공명한다.
작곡가: 첸후이 젠(任真慧)
첸후이 젠은 작곡가이자 시인, 피아니스트로, 그의 음악은 섬세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상상적이고 영적이며 시적인 공간을 펼쳐낸다. 오케스트라, 합창, 서양·아시아 악기를 위한 독주·실내악·전자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편성의 콘서트 음악을 작곡하며, 그의 작품은 시간과 소리, 색채와 시가 매혹적으로 어우러지며 동시대 예술음악에 대한 독자적인 관점을 드러낸다. UC 샌디에이고에서 음악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오케스트라 연맹의 여성작곡가 초견(初見) 및 커미션 프로젝트, 카플랜드 하우스 레지던시에 선정된 바 있다.
테너 솔리스트: 백인재
테너: 강은재, 배재희
바리톤: 이신행
베이스: 전은배, 고현철
휘파람: 이용석
녹음: 김남윤
「첨자추노아·창전수종파초수(添字醜奴兒·窗前誰種芭蕉樹)」, 이청조, 12세기
송대의 대표적인 여성 사인(詞人) 이청조(李清照, 1084–1155)가 지은 사(詞). 북송 멸망 후 송 왕조의 남도(南渡)가 이뤄진 격변의 시기에 전란과 이주, 남편 조명성(趙明誠)의 죽음을 겪은 후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파초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대비되는 밤의 적막은 타향에서의 상실과 고독의 정서를 드러낸다. 사는 일정한 곡조에 맞추어 부르던 운문 형식으로, ‘첨자추노아’는 이 작품이 따르는 곡조와 형식을 나타내는 사패(詞牌)의 명칭이며, ‘창전수종파초수’는 그 부제로 ‘누가 창 앞에 파초나무를 심었는가’라는 뜻이다.
〈그림자 노래(宋未眠)〉, 앨리스 호이칭 영
〈그림자 노래〉는 부드러운 비가 내리는 밤, 홀로 있는 순간의 고독과 정적을 담은 곡이다. 고독은 하나의 청취 순간이 되고, 기억과 아득한 존재들은 마당을 가득 채운다. 이 곡에서 고독이 건네는 부드럽고 고요한 위안은 부재하는 것들을 다시 현존하게 한다. 송나라 사인(詞人) 이청조의 사 ‘첨자추노아·창전수종파초수(添字醜奴兒·窗前誰種芭蕉樹)’는 주로 송대 중국어 발음으로 노래되고 낭송된다. 이 곡에서는 현대 광둥어와 표준 중국어의 파편들이 스쳐 지나가는 흔적처럼 나타나며 서로 다른 시간의 층위를 공존시킨다.
작곡가: 앨리스 호이칭 영(楊凱晴)
앨리스 호이칭 영은 홍콩 출신으로 스위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곡가이자 연주자이다. 그는 동시대 음악 작곡, 테아트르 뮤지컬, 영상 작업, 자신만의 목소리를 활용한 실험적 보컬, 오디오비주얼 설치, 그리고 그 경계들 사이의 작업까지 폭넓게 오간다. 영의 음악은 베니스 비엔날레 뮤지카, 리좀 재단의 데 돌렌 로테르담, 홍콩 신포니에타, 더치 내셔널 오페라 앤 발레, 가우데아무스 페스티벌 등 국제적 무대에서 소개되어 왔다. 그는 자신에게 무엇이 즐거운지를 드러내며, 기발한 상상력을 생생하게 구현하는 데 주목한다.
목소리 및 전자음향: 앨리스 호이칭 영
녹음: .ABOR. 프로덕션
「산데샤라사카(सन्देशरासक, 소식을 전하는 시)」, 압둘 라흐만, 13세기
13세기 서인도 지역에서 아파브람샤어로 지어진 운문으로, 인도 ‘산데샤카비야(सन्देशकाव्य, 전령 시)’의 전통을 계승한 대표적 세속 문학 작품이다. 남편과 멀리 떨어지게 된 여인이 나그네에게 자신의 소식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의 여정과 전언의 과정을 따라 사랑과 그리움의 정서가 그려진다. 자이살메르와 물탄을 잇는 서인도의 교역로를 배경으로 산스크리트 시학의 전통과 지역 언어 표현, 중세 서인도의 이동과 교류를 교차해 살필 수 있는 작품이다.
〈밤(निशा)〉, 카말라 산카람
이 곡은 압둘 라흐만(Addahamāṇa)의 ‘산데샤라사카(सन्देशरासक)’ 일부 대목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되었다. 자신 외에 어떤 의지할 곳도 없는 시 속 여성 화자의 고독은, 두 합창단을 위한 아카펠라를 통해 표현된다. 교창(交唱) 형식의 합창 구조 역시 이별이 남기는 상흔이라는 시의 핵심 주제를 그대로 반영한다. 첫 소절은 각 합창단에서 한 명씩 나온 두 명의 솔리스트가 부르며, 이후 모든 여성의 목소리가 부름과 응답 형식으로 노래한다. ‘라가’ 의 활용은 화자의 감정 상태를 비추어내는데, 그리움을 특징으로 하는 ‘힌돌’ 과 ‘필루’ 에서 시작해 천둥과 폭풍의 공포를 상징하는 한층 어두운 ‘토디’ 로 옮겨간다.
작곡가: 카말라 산카람
카말라 산카람은 오페라와 실험음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작곡가이자 보컬리스트이다. 낯선 관점에 주목하려는 호기심에서 출발해, 최근에는 무용수가 조종하는 ‘디지털 입’을 위한 작곡, 프로스펙트 파크의 나무들을 위한 오페라, 관객의 실시간 데이터 마이닝과 태블릿 컴퓨터 25대로 구성된 합창단이 등장하는 오페라, 브롱크스 밴코틀랜트 파크의 역사를 탐구하는 증강현실 음악 산책 등의 작업을 진행하였다. 인도·미국계 혼혈이자 시타르 연주자로 훈련받은 카말라는 여러 콘서트 및 오페라 작업에서 인도 고전음악의 요소를 접목해왔으며, 미네소타 오페라에서 초연을 앞두고 있는 대규모 오페라 〈라일라 스타의 여러 죽음〉도 그중 하나이다.
소프라노: 서맨사 마틴, 셰이나 마르티네즈, 카말라 산카람
메조소프라노: 메리 라이스
콘트랄토: 커스틴 솔레크
음성학자: 맥선스 라세르-엥베르츠
녹음: 제프 쿡
「타와톳사맛(ทวาทศมาส)」, 작자 미상, 15세기
아유타야 시대 초기 궁중에서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연시(戀詩)로, 태국 고전 정형 운문 형식인 클롱단(โคลงดั้น)으로 지어졌다. 총 260연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연은 네 개의 짧은 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타와톳사맛은 팔리·산스크리트계 어휘로 ‘열두 달’을 뜻하며, 시는 한 해에 걸친 남성 화자의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공간적 이동과 거리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대신, 열두 달이라는 시간의 흐름과 계절 변화를 따라 이별과 그리움의 정서를 드러내는, 시간 중심의 서정성이 특징적인 작품이다.
〈채우기, 받기/Kroḥ’rab〉, 타나칸 스코필드
이 곡은 태국 아유타야 시대(1350–1767) 시 연작 ‘타와톳사맛(ทวาทศมาส)’에서 그리움과 계절의 변화, 욕망, 희망, 슬픔을 담아낸 시구를 선별하고 변용한 것을 바탕으로 한다. 시는 알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연인과 헤어진 고귀한 신분의 남성 인물에 초점을 맞추며, 이 인물은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구현된다. 반면 메아리처럼 울리는 여성의 목소리들은 부재한 연인의 기억이나 환영, 영적 흔적으로 드러난다. 공간화된 생황 과 아코디언, 전자음향은 여름, 위사카 성월(聖月) , 우기, 태국력의 마지막 달(3월)에 이르기까지 계절의 사건들을 환기하며, 그리움과 슬픔이 해소되지 않은 채 이어지는 순환을 그려낸다.
작곡가: 타나칸 스코필드(ธนาคาร สโกลฟิลด์)
타나칸 스코필드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태국 출신 작곡가이다. 그의 작업은 전통적이고 동시대적인 방법론을 통해 소리의 의례성과 극성, 그리고 다문화적 영향의 융합을 탐구한다. 그의 작품은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의 20여 개국에서 클랑포룸 빈, 미보스 콰르텟, 탁 앙상블, 앙상블 리네아, 홍콩 뉴 뮤직 앙상블, 레지덴시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의 앙상블에 의해 연주된 바 있다. 2017년 영 타이 아티스트 어워드, 성 프랑크 판 데르 발 폰즈 프라이즈를 수상했으며, 프롬 재단 작곡가 펠로십을 받았다. 스코필드는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센터의 박사과정 이수중이며, 현지에서 교육 펠로우로 활동하고 있다.
아코디언: 전유정
생황: 김효영
내레이터: 페라비치 푼나트라쿨
여성 보컬: 로건 시글러
낭송 음원 제공: 올란 라따나팍디
녹음: 위니 타베라스, 김남윤
편집 및 믹싱: 타나칸 스코필드
「볼가강이 되어라, 우랄강이 되어라(Еділ бол да, Жайық бол)」, 아산 카이기, 15세기
15세기 카자흐 칸국 성립 초기에 활동한 것으로 전해지는 시인이자 지라우(жырау)인 아산 카이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구송을 통해 전승된 카자흐 전통의 구전 시 형식인 ‘톨가우(толғау)’에 속하며, 카자흐 초원의 유목 사회의 상징적 공간인 볼가강과 우랄강을 배경 삼아 공동체의 안녕과 이상적인 통치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반복과 대구를 활용한 특유의 운율 표현을 통해 철학적·교훈적 사유를 전달한다.
〈떠돈 적 없는 자들(Köchip-konip körmegen)〉, 산자르 바이테레코프
〈떠돈 적 없는 자들〉은 음유시인 아산 카이기(Асан Қайғы)의 시를 바탕으로, 순수한 소리로부터 언어가 탄생하는 과정을 탐구한다. 언어의 리듬 골격에서 시작해, 음절과 배음창법을 거쳐 완전한 선율과 청중을 향한 하나의 질문으로까지 이어진다. 연주 편성은 타악기, 노이즈 오브제(호일, 다양한 사물), 카자흐 전통 활 현악기인 킬-코비즈, 비올라로 구성된다. 여성 낭독자가 시의 텍스트 전체를 낭송하고, 이는 언어가 구성 요소로 파편화되는 과정과 대위(對位)를 이룬다. 곡의 형식은 ‘발아(發芽)’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무의미로부터 의미가, 개별 음소로부터 단어가, 소음으로부터 선율이 점차 생겨난다.
작곡가: 산자르 바이테레코프(Санжар Байтереков)
산자르 바이테레코프는 카자흐스탄 출신의 작곡가로, 모스크바 국립 차이콥스키 음악원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였다. 취리히 프리아트, 국제 유르겐손 콩쿠르, 뉴 제너레이션 등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한 바 있다. 그의 음악은 가우데아무스 뮤직 위크 등 주요 페스티벌에서, 무지크파브릭·탈레아 앙상블 등 여러 앙상블의 연주로 소개되었다. 저명한 작곡가들과 협업했으며, 하버드대학교의 아카데미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카자흐스탄 최초의 현대음악 앙상블을 설립한 바이테레코프는 큐레이터이자 교육자로도 활발히 활동한다. 2024년부터는 쿠르망가지 카자흐 국립음악원 수석강사로 재직 중이다.
목소리, 배음창법, 타악기, 킬-코비즈: 아카잔 박졸
내레이터: 아이쿠미스 바이테레코
바비올라: 파벨 타라세비치
오브제: 산자르 바이테레코프
녹음: 박티야르 쿠사이노프
「해도교거사(海島僑居辭)」, 김우락, 1911
1911년 일제강점기 만주로 망명한 김우락이 지은 내방가사(內房歌辭) 로, 고향을 떠나 낯선 땅으로 향한 여성의 경험과 독립운동가 가족으로서의 삶을 기록한 작품이다. ‘해도교거사’는 바다 건너 타향에서 임시로 머무르는 삶을 뜻하며,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과 함께 안동에서 서간도로 이주하면서 겪은 험난한 여정과 정착의 과정,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한글로 쓰인 내방가사는 여성들이 필사하고, 함께 돌려 읽고, 소리 내어 읊조리며 서로의 경험과 감정을 나누던 문학적 실천이었다.
〈건너의 목소리〉, 부다혜
이 곡은 김우락(金宇洛, 1854–1933)의 가사 ‘해도교거사(海島僑居辭)’를 바탕으로 두 명의 성악가와 두 명의 판소리 소리꾼의 음성을 사용한다. 낭독과 허밍, 확장된 발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발화된 목소리는 전자음향으로의 변형과 재구성을 거쳐 다채널 공간 안에 배치된다. 곡은 단어와 글이 지닌 의미에서 출발하지만, 발화되는 순간 그 안에 담기는 호흡과 억양, 그리고 감정의 결을 따라간다. 곡이 전개될수록 언어로서의 소통 기능은 점차 희미해지고, 말의 의미를 넘어선 정서와 음성의 질감만이 공간에 남는다. 서로 다른 목소리들은 중첩과 분산을 반복하고, 의미를 전달하던 언어는 점차 감정의 흔적으로 변하며, 그 흔적은 공간 속에서 새로운 소리의 형태로 이어진다
작곡가: 부다혜
부다혜는 현대음악과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곡가로, 한국, 프랑스, 독일 등 다양한 지역에서 작업해 왔다. 어쿠스틱 음악에서 출발해 전자음향과 공간화 작업으로 영역을 넓히며, 소리를 통해 시간뿐 아니라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에 관심을 두고 있다. 특히 소리의 이동·층위·거리감을 활용해 청자가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 또한 시각예술가, 안무가와 협업하며 설치 기반 또는 다학제적인 작업을 발전시켜 왔다.
목소리: 방신제, 최재연, 김유진, 이혜진
낭송 음원 제공: 권숙희
녹음: 김남윤
구작전시: 김영은의 소리, 그리고 청취의 탐구 여정
〈세미콜론;이 본 세계의 단위들〉, 2011.
〈맞춤벽지음악〉, 2014.
〈밝은 소리 A〉, 2022.
〈붉은 소음의 방문〉,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