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정원: 밤이 내리면, 빛이 오르고감각정원

  • 일정 2021.09.01. ~ 2021.12.31.
  • 장소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하늘마당 & 열린마당

《감각정원: 밤이 내리면, 빛이 오르고》 전시는, 전 지구를 엄습한 코로나19 팬데믹에  휘둘리지 않고 잠시나마 의연하게 산책할 수 있는 순간을 관람객에게 제공하고자  기획되었다. 밤이 내려앉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산책로에 예술 작품이 빛을 발할 때,  사람들이 하나둘씩 코로나 ‘집콕’을 벗어나 자유롭게 산책하며 작품을 체험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시와 음악과 향기와 미술과 빛이 어우러진 향연을, 사람들이 온  감각을 열어 느낀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지 또다시 상상해 보았다. 

그래서 4,000제곱미터의 산책로에 ‘감각정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여덟  명의 현대 미술 작가와 한 명의 시인을 초청하여 작품 제작을 의뢰하였다. ‘흐름’이라는  전시 기획의 키워드를 작가들에게 드리며, 이 산책로에 알맞은 ‘장소 특정적’인 작품을  창조해 보자고 제안했다. 100미터가 넘게 쭉 뻗어 내려가는 소방 도로, 그 옆에 우뚝 서서  마치 이정표처럼 사방에서 보이는 냉각 타워, 그 주위를 둘러싼 배롱나무 숲, 건물과 건물  사이에 연극 무대처럼 자리 잡은 크고 작은 마당들, 그 너머에 ‘하늘마당’이라 불리는 넓고  경사진 잔디와, 그 상부에 위치한 거대한 지붕 ‘그랜드 캐노피’, 이 장소들을 이리저리로  이어 주는 다양한 종류의 계단과 오솔길… 길의 ‘흐름’을 따라 둥지를 틀고 서식하는 현대  미술 작품들을 상상하며, 이 모든 것의 조화를 현실화시키고 싶었다. 

‘흐름’이라는 전시의 키워드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명언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말이 내포하는 ‘변화’와  ‘생성’은 그 의미의 폭과 깊이를 헤아려 볼 때 가히 우주를 삼킬 만하다. 예측 불가능성을  가진 ‘변화’라는 개념은, 기억과 의식에서 빚어진 ‘생성’이라는 개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마치 음과 양, 빛과 어둠, 혼돈과 질서가 공존하는 것과 같다. 

이번 전시에 99% 일반 대중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시로 유명한 하상욱 시인의 시를  초청했던 터라, 전시 제목을 지을 때 박스 형태 안에 글자를 채워 넣는 하상욱의 시각적  창작 스타일을 차용하려 노력했다. 긴 소방 도로에 투사되는 프로젝션 매핑 작품 속에  시가 흘러가는 이미지를 그려 보면서 하상욱의 박스형 시가 제격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결국 용세라 작가의 역동적이고도 섬세한 디자인과 하상욱 시인의 시를 연결시킨 미디어  아트 작품을 의뢰하게 되었다. 작품에는 하상욱 시인이 직접 선정한 5편의 시가 등장한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또는 홀로 이 감각정원을 찾는 관람객들이 작품에 공감하기를, 또  시상이 심상에 스며드는 소중한 기억을 가지고 가기를 바란다.  

또 다른 세 명의 작가도 긴 소방 도로에서 작품을 보여 준다. 최성록 작가와  문창환 작가는 3D 이미지를 벽면과 바닥에 투영하여 관람객들이 가상 공간을 산책하도록  유도한다. 최성록은 태초의 자연 공간을 빛, 불, 물의 3원소가 생성, 진화하는 신화적  공간으로 해석한다. 문창환은 자신의 사주팔자 명식(命式)에 드러난 물상을 가지고 산과  바다와 나무가 있는 자연 경관을 창조하고, 그것을 메타버스로 생성하고자 시도한다.  권혜원 작가는 ‘차경’, 즉 자연을 가져와 인위적 정원으로 만드는 데에 관심을 갖는다.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의 감각정원은 사실상 ‘차경’의 산물인데, 작가는 이곳에 보충되었으면  하는 요소로 ‘물’을 꼽고 있다. 광주천의 원류인 무등산으로부터 영산강까지 장장 수  킬로미터의 생태 영역을 ‘차경’한다면 어떨까라는 상상력에서 작품은 출발한다. 

감각정원은 관람객의 시각뿐만 아니라 후각과 청각, 촉각에도 반응하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신미경은 ‘비누 조각가’로 국내외에 잘 알려진 현대 미술 작가인데,  ‘변화’와 ‘생성’을 은유적으로 작품에 구현하고 있다. 올해 7월 초부터 내린 거센 장맛비로  비누 조각 설치 작품이 풍화되어 고대 건축물의 잔해처럼 ‘열린마당’에 펼쳐져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더욱 진하게 풍기는 비누 냄새는 개개인의 기억을 자극하도록  고안되었다. 신미경 작가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같이 

냄새가 지난날의 기억을 일깨우는 단초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기억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냄새에 대한 기억은 ‘생성’의 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도함 작가가 너른 하늘마당에 설치한 투명한 구형의 작품은 청각과 촉각을  자극하기 위하여 제작되었다. 이번 전시 작품의 원형이 되는 작품이 실내에 설치되었던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이 작품을 펑 뚫린 넓은 잔디에  그대로 옮겨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관람객들은 이 작품 안에 들어가 블루투스를 통해  자신의 스마트폰 음악 보관함에 저장된 ‘최애곡’을 꺼내 플레이하고, 작품 밖에 있는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들을 상대로 디제이 퍼포먼스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  안에서는 진동을 통하여 음악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청각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함께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이번 야외 전시를 위하여 새롭게 제작된 작품을

 통해 음악으로  소통하는 법을 새삼 일깨웠으면 한다. 

리경 작가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아늑한 중정에 달을 형상화한 미디어 아트를  선보인다. 이 달의 형태는 기울고 차오르는 달의 ‘변화’와 ‘생성’을 상징하고, 색상의  변화는 ‘블루 문’, ‘블러드 문’ 등 때에 따라 다채롭게 변화하는 달의 색을 표현한다.  감각정원에서 중정 인근에 가장 높게 솟은 타워와 주위를 둘러싼 배롱나무 숲은 왕성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에메랄드 빛으로 뒤덮인다. 이 빛은 고기영 작가의 작품으로 그랜드  캐노피 안쪽에서 높이 천장까지 피어오른다. 프로젝션 매핑 작품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과  함께 에메랄드 빛의 움직임이 동기화되어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시각과 청각이  조화를 이루게 된다. 감각정원을 찾는 관람객들이 소소한 산책을 즐기며 일상의 생명력과  기대감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이기모(선임 큐레이터, 아시아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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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안내

오도함

〈당신의 피부가 듣는다〉, 2021.

고기영

〈에메랄드 빛의 숲〉, 2021.

권혜원

〈풍경을 빌리는 방법〉, 2021.

최성록

〈시작의 계곡〉, 2021.

〈빛,불,물〉,

용세라

〈흘러가는 말〉, 2021.

문창환

〈더 완벽한 세계〉, 2021.

신미경

〈香水(향수)와 鄕愁(향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021.

리경

〈더 많은 빛을 _ 기쁨 가득한〉,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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