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첨화

임직순 작가 소개

1921–1996 / 충청북도 괴산(현재는 충주에 해당)

강렬하고 중후한 색채감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남긴 운창(雲昌) 임직순은 ‘색채의 마술사’로 불린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일본미술학교(日本美術學校)에서 공부하였다. 이후 한국으로 귀국하여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등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였다. 1961년부터 임직순은 오지호의 뒤를 이어 14년간 조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광주에 머물러 제자들을 양성하는 것은 물론, 전국 단위 미술 전문 실기 대회인 ‘전국 학생 미술 실기 대회’를 창설하기도 하였고, ‘광주 일요 화가회’와 ‘조선대학교 미술 연구소’ 등의 발족을 통해 실질적으로 호남 서양화단 구상 회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임직순의 작품은 강렬한 야수주의적인 색채 구성이 특징이다. 면적인 강렬한 색채의 붓 터치와 주로 여인과 꽃을 소재로 한 좌상 구도의 작품을 많이 남겼다. 광주에 거주하면서부터는 자연 풍경 또한 즐겨 그렸다. 초기에는 대상 재현에 보다 집중하였으나 그의 작품이 절정에 이른 1970-1980년대의 작업에서는 단순히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을 넘어 대상의 본질에 접근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작가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시각적(視覺的)인 진실에서 심각적(心覺的)인 진실로 탈바꿈하게 되었으며, 어느덧 색채의 세계는 환상의 세계로 변화를 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임직순은 대상 앞에서 느껴지는 감흥을 주관적인 색채로 녹여 내며 작가 고유의 중후한 화풍을 구축하게 된다.

임직순은 정부 주도의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에 꾸준히 출품하여 예술적 이력을 쌓았고, 제6회 국전에서는 작품 <좌상>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출품 작가로, 이후엔 심사 위원으로 국전에 계속 참여함으로써 광주에 거주하지만 서울과의 연결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지방과 서울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색채가 타고난 생리라고 말했던 작가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색채 안에서 빛의 개념을 더하여 보는 이를 심미적으로 확장된 세계로 몰입시킨다.

김환기 〈무제〉

연도 미상.

임직순 〈노을〉

연도 미상.

임직순 시각적 해설

〈가을과 여인〉, 1974.

파테 무다레스 시각적 해설

〈최후의 만찬〉,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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