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바바뇨냐 : 해항도시 속 혼합문화
코치, 향료로 빚은 해항고도
인도 서남부 케랄라주에 위치한 코치는 인도양과 접해있는 항구도시이다. 육류의 맛과 보존성을 높이는 향신료의 대표주자인 후추 원산지이기도 한 코치에는 기원전부터 교역을 위한 사람과 물자가 드나들어 문화의 전파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힌두교는 전통적 관습과 신앙이 결합된 형태로 인도인의 생활양식 자체를 규정한다. 이상적 삶의 방식인 다르마를 표현하는 전통무용극 카타칼리와 거리 곳곳에 자리한 힌두 사원은 모든 곳에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인도인의 개방적인 태도를 반영한다.
아시아의 서쪽 끝인 코치에는 동쪽 끝 중국에서 전래된 흔적이 남아 있다. 커다란 그물을 물에 담갔다가 들어올리는 고기잡이 방법인 ‘중국식 어망’이 그것이다. 정작 중국에서도 찾기 힘든 모습이 3,000km의 시공간을 넘어 코치의 대표 볼거리가 되었다.
유럽은 아시아를 향한 항해의 출발지로 코치를 이용하고자 했다. 인도로의 직항로를 발견한 바스쿠 다 가마 이후 포르투갈은 코치의 왕과 협력 관계를 맺고 항구에 요새를 세워 무역요지로 삼았다. 또한 케랄라의 전통 건축 외형에 유럽식 내부 장식을 가미해 만든 마탄체리 궁전을 세웠는데, 이후 진출한 유럽 세력의 변화에 따라 네덜란드 궁전이라고도 불리웠다.
넓은 영토와 풍부한 물자를 지닌 코치의 지리조건이 불러일으킨 변화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 프란시스 성당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포르투갈의 진출과 함께 만들어져 한때 바스쿠 다 가마가 묻혀 있었던 이 가톨릭 성당은 네덜란드 시기에 개신교회로, 영국 지배 때에는 성공회당으로 쓰인 과거가 있다.
거센 역사의 흐름 안에서 작은 공동체들도 존재했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유대인들은 교역지였던 코치에 정착하였지만, ‘파라데시 시나고그’라는 회당을 세워 그들의 믿음을 지켜나갔다. 인근 스리랑카 현지 여성들과 유럽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버거(Burgher)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예술로 풀어낸 독특한 거리를 조성해 그들의 자취를 남겼다.
오늘날 코치의 모습은 인도의 혼합 향신료인 마살라와 닮아 있다. 마살라는 여러 재료가 쓰인다는 보편적 원칙 외에 정해진 규칙이 없기에 섞는 사람에 따라 수없이 많은 향과 맛을 낸다. 향신료를 매개로 외부 세계로 열린 코치에는 수많은 시간과 함께 쌓여 온 혼합문화의 여운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