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유지원 작품해제
〈판타스마고리아〉, 2023.
나무, 특수 판지, 철, 시멘트, 아크릴 페인트, 가변크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작지원. 협력: 천기정
유지원은 조각, 설치, 영상 등의 매체를 통해 특정 장소나 사물과 연결된 역사와 개인의 기억을 추적하는 작업을 전개해왔다. 《틈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에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커미션으로 벽면 설치 작품인 <판타스마고리아>(2023)를 선보인다.
작품의 제목인 ‘판타스마고리아’는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언급되는 개념으로 ‘비현실’, ‘환상’, ‘환영’, ‘주마등’등의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얀 벽에 자리잡은 작품은 초현실주의* 작품처럼 기존의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든다. 건축용 특수 판지를 찢고 뜯어서 제작된 작품은 건축 현장을 허물고 남은 잔해를 상기시킨다. 작가는 건축적 이미지를 차용하거나 건축 재료들을 이용해 공간의 조각들을 재조합했다. 이로써 건축을 통해 끊임없이 ‘생산’되고 ‘폐기’되는 현대 도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건축은 새로운 공간을 끊임없이 양산한다. 그러나 이러한 창조적 과정은 새로 지어짐과 동시에 언제가는 낡은 것이 되어 폐기될 수밖에 없는 변증법적 운명에 따른다.
이는 일상에서 구매되고 버려지는 상품의 속성과도 유사하다. 소비 풍조가 만연한 자본주의에서 건축뿐만 아니라 현대미술 또한 상품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상품을 소비하는 우리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스스로가 소비의 주체인지, 하나의 상품 그 자체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있다.
작가는 파편적 이미지를 통해 관객들의 인식 사이에도 ‘틈’을 내고자 했다. 작품과 관객이 마주하는 순간 주마등처럼 불현듯 틈을 만들어 그 사이로 초현실적이고 혼란스러운 꿈에서 깨게 만들 시각적 충격을 선사한다. 작가는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속에서 잊혔던 개인의 기억, 체취와 같은 삶의 조각들을 찾아보길 제안한다. 폐허가 된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기회를 제공해 삶에 깃든 역사와 가치를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을 전하고자 한다.
* 초현실주의는 오브제라는 장치를 활용해 사물의 본래 목적과 다르게 사용하거나 맥락의 연결을 끊어 사물의 물신성을 탐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