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헤매기
김재민이
〈레이온 공장 달리기〉, 2023.
아카이브,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가변크기, 12분 30초.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작지원. 작가 제공.
김재민이는 공장이 남긴 흔적을 추적하며 달린다. 본래 사냥감을 쫓는 일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한 원초적 행위였던 달리기는 오늘날 도시민들의 건강 증진 활동 혹은 취미 활동으로 변모했다. 〈레이온 공장 달리기〉에서 작가는 한국·중국·일본으로 국경을 넘나들며 ‘여행’ 중인 공장의 자취를 뒤쫓으며, 공업지대의 이동을 중심으로 현대 도시의 탄생과 팽창, 오늘날의 소비 사회를 살펴본다. 레이온(인견)은 양복 안감, 여성 의류, 잠옷과 침구류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섬유의 한 종류다. 동아시아에서 레이온은 20세기 초 일본 도레이에서 생산하기 시작했고, 1964년 생산 설비를 국내에 들여와 남양주 지역에서 생산했으며, 1993년 중국의 한 화학섬유 공사에 매각되었고, 2000년대 초 자취를 감추었다. 이황화탄소 중독을 일으키는 레이온 생산 부지는 점점 변두리로 옮겨가고 옛 부지에는 자못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채색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지만, 레이온도 사라졌을까? 비스코스, 인견, 모달 등 이름만 달리한 레이온 제품은 친환경 라벨을 달고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레이온 소재의 ‘그린 패션’을 착용하고, 노동과 질병의 흔적이라고는 말끔히 세탁된 공장의 이동 동선을 따라 달리는 작가는 도시 거주자이자 소비자로서 양가적 태도를 보여준다. 헉헉대는 숨소리는 생존을 위한 본능적 행위로서의 달리기와 ‘힙’한 취미로서의 ‘러닝(running)’, 숨 가쁜 노동과 도취감(high)에 찬 소비라는 이질적인 양상을 꿰뚫고 지나가며, 도시의 ‘승리’를 기념한다.
쉬운 글 해설
작가 이름 김재민이
- 만든 때 2023년
- 작품 종류 아카이브*, 영상
*아카이브 : 자료, 정보 등을 모아 만든 작품 - 보여주는 방식 단채널 영상**, 색깔과 소리가 있는 영상
**단채널 영상 : 1개의 화면에서 영상이 나오는 방식 - 작품 길이 12분 30초
- 작품 크기 가변 크기***
***가변 크기 : 전시마다 작품 전체 크기가 달라지는 것 - 이 작품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지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레이온 공장 달리기> 영상은 레이온 공장이 옮겨간 장소를 따라가며 달리는 작가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작가가 왜 이곳에서 달리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레이온’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레이온은 양복에 쓰이는 옷감, 잠옷, 이불 등을 만들 때 다양하게 사용되는 천입니다. 레이온을 만드는 공장은 1900년대 초에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에 처음으로 세워졌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64년 남양주에 처음 생겼다가 1993년에 중국의 한 회사에 팔리면서 2000년대 초에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레이온을 만들 때 몸에 나쁜 물질이 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레이온 공장이 있던 곳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파트 단지가 세워졌지만, 공장이 없어졌다고 레이온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비스코스, 인견, 모달 등의 옷감은 친환경 제품이라 불리며 팔립니다. 하지만 사실 이것들은 모두 레이온의 한 종류입니다. 김재민이 작가가 입고 달리는 초록색 레이온 옷처럼, 이 레이온 제품들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을 병들게 하면서도, 그것을 사는 사람들은 친환경 제품을 산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달리는 이유도 달라져 왔습니다. 오래전 사람들은 사냥감을 쫓기 위해 달렸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건강을 지키거나 즐거움을 얻기 위해 달리곤 합니다. 작가의 달리기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작가의 헉헉대는 숨소리는 생존을 위해 숨가쁘게 일하면서도, 흥겹게 소비를 이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강동주
〈유동, 아주 밝고 아주 어두운〉, 2023.
김방주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날 까마귀가 떨어트린〉, 2023.
김재민이
〈레이온 공장 달리기〉, 2023.
량즈워+사라 웡
〈팔을 구부리고 있는 소녀〉, 2014.
〈창파오를 입고 모자를 쓴 남자〉, 2014.
〈빨간 우산을 쓴 오피스 레이디〉, 2010.
〈의자를 들고 달리는 아이〉, 2014.
〈양복 차림으로 목 뒤를 문지르고 있는 남자〉, 2018.
〈등을 긁고 있는 일본 주부〉, 2010.
〈고무 대야를 머리에 이고 가는 아주머니들의 모습〉, 2023.
레지나 호세 갈린도
〈누가 그 흔적을 지울 수 있을까?〉, 2003.
〈사람들의 강〉, 2021-2022.
〈땅은 망자를 감추지 않는다〉, 2023.
리슨투더시티
〈거리의 질감〉, 2023.
리 카이 청
〈저 너머 텅 빈 땅〉, 2022.
〈지상지하〉, 2023.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 울라이
〈연인, 만리장성 걷기〉, 1988/2010.
미라 리즈키 쿠르니아
〈발자취를 쫒다〉, 2023.
이창운
〈공간지도〉, 2023.
프란시스 알리스
〈실천의 모순 1 (가끔은 무엇인가를 만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1997.
〈실천의 모순 5: 우리는 사는 대로 꿈꾸곤 한다 & 우리는 꿈꾸는 대로 살곤 한다〉, 2013 .
〈국경 장벽 유형학: 사례 #1부터 #23까지〉, 2019-2021.
박고은
〈글자를 입은 소리들이 모인 지도〉, 2023.
새로운 질서 그 후
〈그 후 시티 〉, 2023.
〈둘러보기〉,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