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이은정 작품해제
〈모두의 나무〉, 2023.
사진, 캔버스에 인쇄, 가변크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작지원.
이은정은 ‘실로 꿰매기’와 ‘펜촉 드로잉’을 통해 ‘시간의 지층’을 담는 작업을 전개해왔다.
사람 피부의 주름, 나무의 결, 오래된 건물의 주름, 상처로 인한 흔적 등 시간의 흐름에 놓인 존재들을 작업을 통해 새롭게 구성한다. 《틈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에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커미션으로 부드러운 조각* 작품인 <모두의 나무>(2023)을 선보인다.
<모두의 나무>는 ‘목격자 나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총격을 입은 나무들이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조경은 맡은 마이클 반 발켄버그는 이 나무들을 목격자 나무라 불렀고, 광장과 이어지는 보존 지구의 주요 조형 요소로 삼았다. 작가는 과거의 아픔을 간직한 목격자 나무의 모티프를 실내 공간에서 재구성하며 현재를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를 나무와 함께 목격자로 설정하였다.
작가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촬영한 수백 그루의 나무를 캔버스에 인쇄하였고, 그 이미지 조각들의 ‘틈’을 ‘바느질’로 꿰매었다. 바느질은 여성적, 장식적, 공예적인 행위로 여겨질 수 있으나, 찢어진 상처가 생겼을 때 봉합하여 낫게 하는 치유와 사물을 수선하는 노동의 과정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번 작업에 붉은 색 실을 활용해 엄혹했던 시대의 혈흔과 회복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한편, 꿰매기의 반복은 시간을 축적해나가는 작업으로 상처가 남겨진 과거와 그 상처를 딛고 일어난 현재까지의 시간을 담아냈다.
가지들이 실로 얽히고설킨 다섯 그루의 나무들은 하나의 거대한 연리지(連理枝)의 형상을 띤다. 작가는 나무의 결을 보며 사람의 살과 주름, 나뭇가지를 보며 하늘을 향해 팔을 뻗은 사람을 떠올리곤 한다. 연리지는 인간의 감정 중 사랑을 상징한다. 좁은 공간을 나눠 갖고 사는 나무들은 햇빛을 받기 위해 가지와 잎을 펼친다. 그러면서 서로의 몸을 부딪히고 맞닿인다. 그러다 부족함을 함께 조금씩 메워야만 생존할 수 있음을 깨달으며, 아예 몸을 합쳐 한 나무가 되기도 한다.
서로 다른 나무의 이미지를 바느질로 연결하여 새로운 조형물로 만드는 과정은 작은 기적의 시작이며 변화와 진화의 과정이다. 하나 보다는 둘, 둘보다는 여럿이 하나 되었을 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봉합된 이미지의 틈, 나무와 나무 사이의 틈, 과거와 현재의 틈, 그 무수한 틈을 들여다 보면 나무가 만들어낸 새로운 공간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 부드러운 조각: 천, 종이, 직물, 플라스틱 및 이와 유사한 유연하고 단단하지 않은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조각 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