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첨화

천경자 작가 소개

1924–2015 / 전라남도 고흥 출생

천경자는 여인상과 꽃을 통해 인고해 온 자신의 삶의 내면을 환상적인 화면과 색채로 승화시키며 독보적인 화풍을 구축했다. 고흥의 바다와 하늘, 들판의 꽃들을 보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일제 강점기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현 여자미술대학女子美術大学)에서 공부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20대 초부터 집안의 가장 역할을 했다. 1946년 모교인 전남여자고등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고, 이후 광주사범학교와 조선대학교 미술학과에 출강했다. 그때 당시 여동생의 죽음으로 큰 슬픔을 겪은 후 그렸던, 꿈틀대는 뱀의 군집을 담은 <생태>는 작가의 역작으로 평가된다.

굴곡진 삶은 천경자의 작품 세계를 ‘한의 미학’으로 이끌었다. 일찍 끝난 첫 번째 결혼 생활과 가정이 있었던 두 번째 남편과의 불안정한 만남은 작가의 삶에 지속적으로 역경을 안겨 주었다. 작품에 드러나는 주관적인 풍경, 공허한 눈빛의 여인상, 원색의 꽃들은 비극적인 현실을 환상으로 풀어낸 것이었다. “그림은 나의 분신”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림은 천경자에게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자 구원이었고, 고통스런 삶의 해방구였다. 광복 이후, 서양화가가 증가하고 추상 미술 등 다양한 실험적 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에도 천경자는 동양화 재료를 사용하는 채색화가로서 자신의 길을 나아갔다. 1954년 홍익대학교에 재직 중이던 김환기의 제안으로 광주에서 서울로 이주하여 당대의 문학가, 예술가들과 교유하였다. 서울 생활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즈음 작가는 창작의 고갈을 느껴 1969년부터 간헐적으로 해외 여행을 떠난다. 천경자는 여행지에서 고갱이나 메릴린 먼로와 같은 역사적인 예술가의 족적을 밟기도 하면서 자신의 예술을 확장해 나갔다. 고된 삶 속에서 천경자는 늘 고독과 외로움 속에 있었지만 슬픔과 고통의 한을 풀어내는 살풀이와도 같은 예술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김환기 〈무제〉

연도 미상.

임직순 〈노을〉

연도 미상.

임직순 시각적 해설

〈가을과 여인〉, 1974.

파테 무다레스 시각적 해설

〈최후의 만찬〉,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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