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속으로: 기억과 사건
정소영
〈증발〉, 2024.
설치, 알루미늄, 가변크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작 지원. 작가 제공.
〈응결〉, 2023-2024.
설치, 알루미늄, 가변크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작 지원. 작가 제공.
〈부유물〉, 2024.
설치, 유리, 모래, 가변크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작 지원. 작가 제공.
〈침전물〉, 2024.
설치, 레진, 옛 전남도청에서 수집한 물질, 가변크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작 지원. 작가 제공.
정소영은 장소 특정적 설치, 조각, 비디오, 공공적 개입 등의 활동을 통해 조각 매체의 범주를 실험하고 확장한다. 자신이 서 있는 땅의 표면 아래(지질학)와 그 위(지정학)까지 관심을 가지며, 지질학을 기반으로 장소에 담긴 시간성의 층위를 드러내고 지정학적 경계에 놓인 역사의 장소 안에서 물질의 시간에 대해 고민한다.
일어난 사건은 흔적으로 시간을 증명하고, 이내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 <증발>과 <응결>은 움직이고 변하는 것과 고정되고 단단한 것 사이에 일어나는 일시적 현상을 시간 속에 붙잡아 가시화하는 작업이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물자국 형태의 조각은 지표면에 응집되며 ACC 야외 바닥에 얇은 막을 형성한다. 바닥 위 격자의 직선을 따라가는 듯 무시하고, 직선을 중심으로 모였다 흩어지면서 경계를 침범한다. 뜨거운 바닥에 차가운 공기에 의해 잠시 나타난(응결) 동그라미들은 금새 공기 중으로 흩어지며(증발) 그 흔적을 남긴다. 과거에 고여있던 물이 증발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것인가. 아니면 외부에서 새로운 물길이 밀려드는 것인가. 사라지고 흘러가야 할 것이 반짝이며 주변을 비춘다.
옛 전남도청에서 수집한 폐자재, 흙, 시멘트 가루들을 굳힌 조각인 <침전물>과 투명한 돌 안에 모래를 가둬놓은 <부유물>에는 가벼움과 무거움이 공존한다. 평화로운 듯 둘로 나눠져있던 세상의 경계는 흐려지고, 부유하는 것들과 가라앉는 것들은 언제든지 그 위치를 서로 뒤바꿀 수 있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힘은 역전되고, 서로를 품으며 마침내 한 덩어리가 된다. 어디선가 굴러와 멈춰진 돌과 반쪽짜리 덩어리, 계단 층층마다 쌓여있던 먼지는 역전된 공간과 연속적 시간 속에서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는 퇴적물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