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속으로: 기억과 사건
이웅열
〈상실 공유〉, 2024.
파빌리온 설치, 가공 폐 플라스틱, 가변 크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작 지원. 작가 제공.
이웅열은 폐목재, 버려진 장난감이나 물건 등 우리의 삶에서 흔히 사용하기 꺼려하는 소재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선보여 왔다. 현재는 곰디자인이라는 이름의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전시 공간 디자인 및 조성 등을 업으로 하고, 공간이 만들어지고 폐기되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자재를 활용하는 방식을 고민해오고 있다.
옛 전남도청이 자리하기 이전, 현재는 ACC가 위치한 이곳에 광주읍성 터가 있었다. 광주를 지켜주던 석성(石城)은 비바람과 외부의 침략에도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요새였으며, 주민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마을의 울타리이자 무더운 여름날 그늘이 돼줬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며 광주읍성은 해체되고 내부의 건축물들 또한 철거되거나 그 용도가 변경됐다. 작가는 여기저기에 버려진 광주읍성의 돌들이 민가 담벼락 또는 주춧돌과 같이 다양한 용도로 재사용됐으리라 추측한다. 마을의 가장 바깥 자리에서 각 집 안 깊은 곳까지 다시금 사람들의 일상 곳곳에 들어가 새로이 활용된 것이다.
<상실 공유>는 개인에게 돌아가 새로 활용됐던 광주읍성의 돌들과는 달리 개인 또는 집단이 사용하고 폐기한 플라스틱을 다시 모아 옛 광주읍성의 모습을 재현한다. 플라스틱은 쉽게 사용하고 버릴 수 있는 편리한 소재인 만큼 우리 일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플라스틱의 수요는 줄지 않고 막대한 폐기물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보다는 새활용(Up-cycle)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인 플라스틱 처리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작가는 전국에서 버려진 플라스틱을 모아 재생 가능한 플라스틱 모듈을 제작한 후, 이 모듈을 조립해 내외적 충격에 강한 성곽 파빌리온을 설치했다. 사람들의 터전을 지켜줬던 광주읍성처럼 ACC를 찾는 시민들의 울타리이자 쉼터를 마련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