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피부가 듣는다〉, 2021.
설치를 위한 드로잉, 혼합 매체, 혼합 재료, TPU볼, 촉각 변환기, 베이스 쉐이커, 앰프, 블루투스 송수신기, 350x350x415cm, ACC 커미션
오도함은 음악가, 공연 기획자, 미술가 등으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다. 그는 음악을 둘러싼 다양한 상황과 조건에 주목하며 작업을 이어 가고 있다. 오도함은, “북조선에 펑크 록커가 있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던 《북조선 펑크 록커 리성웅》(아트선재 센터, 서울, 2012), 마석가구단지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록 페스티벌 마석 동네 페스티벌(마석가구단지, 남양주, 2013), 청각 장애인의 음악 감상법에서 영감을 받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서울, 2019) 등의 공연을 기획하였다.
2020년부터 앱 서비스 기획자인
김영준 그리고 자연어 처리(NLP) 엔지니어 김성현과 함께 ‘Team Neeeds’를 운영하며, 인공 지능 글짓기 프로그램인 지피티(GPT)를 활용하여 경전을 합성하는 프로젝트 을 진행하고 있다.
연히 한 청각 장애인 음악 팬의 음악 감상법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핸드폰 스피커를 켜고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고정시킨 후 표면으로 흘러오는 진동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놀라움과 함께 곧 이런저런 궁금증이 생겨났다. ‘과연 이 사람이 느끼는 음악과 내가 듣는 음악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 사람이 느끼는 음악은 어떤 느낌일까?’
그러던 중 어떻게 그런 시도를 했을까라고 먼저 곱씹어 보다가, 촉감에 대한 본능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라고 조심스레 생각해 보았다. 이어 만약 음악을 만질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한 번쯤 해 본 생각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생각으로부터 손에 닿거나 만질 수 있고 때로는 올라탈 수도 있는 촉각적 스피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순간, 7살 때 바다로 피서를 가서 껴안았던 고무 튜브의 촉감이 뇌리를 스쳤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지만, 그날의 햇살, 물기, 튜브의 팽팽함… 살면서 처음으로 영원히 계속되길 바랐다. 음악을 만지고 싶다는 상상이 그날의 기억까지 이어지자, 왠지 이 프로젝트에서 고민이 될 때는 아이의 마음으로 생각해 보면 좋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이후 풍선에 물을 가득 채우고 작은 스피커를 붙여서 진동을 전달시키는 실험을 해 보고, 농업용으로 쓰이는 폴리염화비닐(PVC) 튜브를 구해 와서 10톤의 물을 집어넣고 야외에서 공연을 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불특정 다수의 접촉이 이뤄지는 공연은 위험한 것이 되었고, 튜브의 물을 빼기 위해 고생했던 기억이 겹치면서, 1인용 에어 볼을 제작하는 과정에 이르게 되었다.
소리를 진동으로 변환해 주는 장치의 존재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택틀 트랜스듀서(tactile transducer)’, 즉 촉각 변환기로, 우연히 레이싱 게임 전문 스트리머가 자동차의 떨림을 구현하는 디스플레이에 대해 소개하는 영상을 보고 알게 되었다. 서로 상관없는 기술과 생각이 우연히 모여 연결되고 있었다. 뭔가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거기에서부터 시작이었다.
의 설치 장소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하늘마당 언덕 한가운데이다. 이기모 큐레이터가 제안해 주었는데, 당시에 언덕 위에 작품을 설치하는 것이 불안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에 대해 ‘작품이 언덕에 뿅 나타나서 떠 있는 느낌’으로 화답해 보고자 했다. 작업에 사용될 에어 볼도 투명한 재질이라서, 언덕 위에 공이 살짝 떠 있다면 탑승했을 때 어떤 기분일지 설레기도 했다.
이 시점에서 ‘만약 어린아이라면 어떻게 공을 언덕에 둘까?’ 고민해 보았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접근해 보다가, 아내에게 모형 공을 손가락으로 집어 띄워 올린 모습을 하게 하고 사진을 찍어 보았다. 이 이미지가 마음에 들어, 설치 예정지에 예상도를 그려 보기도 하며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나갔다.
이윽고 구조 분석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해, 공을 안정적으로 세워 두기 위한 와이어의 개수와 두께, 설치에 사용되는 스크루의 인장 강도 등을 구하고, 그것과 와이어의 체결 방식에 관한 보고서를 주고받았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어린아이의 마음이 현실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는 수많은 사회적 비용과 산고를 치러야 함을 알게 되었다.
우연히 알게 된 한 청각 장애인의 음악 감상법으로부터 까지, 그렇게 멀리 온 것 같진 않지만 꽤 많은 질문들을 해결해야 했다. 그것이 때론 작업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처음을 만들어 주신 그분께 감사를 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감사합니다. 잘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