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 미래상 2024: 김아영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 2024.

3채널 영상, 설치, 약 15분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는 게임엔진 기반의 컴퓨터 그래픽 영상,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한 다채널 영상과 설치로 구성된 대형 프로젝트이다. 작가는 《ACC 미래상》을 위해 인도의 다양한 지역의 천문대를 방문하고 천문학자, 윤도 장인을 인터뷰하면서 사라져 가는 역법, 가능세계 이론, 시간의 물리학 등을 연구, 분석하는 과정을 거쳤다. 전시장에는 수학적이고도 규칙적인 움직임을 통해 시간의 그림자를 캐스팅하는 거대한 역법의 표식이 새로운 시간의 문을 열고, 중앙의 거대한 3면 스크린에는 인공지능과의 협력을 통해 창조된 가상세계가 상향된 미래의 모습으로 펼쳐진다.

전편인 <딜리버리 댄서의 구>의 두 주인공, 에른스트 모와 엔 스톰은 이번 작품에서 전작과 완전히 달라진 배경 즉, 먼 미래의 고립된 가상 도시인 ‘노바리아’의 주민으로 등장한다. 에른스트 모는 우연히 소멸된 과거의 시간관이 담긴 유물들을 배달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서로 다른 시간관과 가능세계 사이의 충돌을 그린다. 이곳은 과학기술을 통해 완벽하게 제어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외부 세계와의 연결성이 불필요한 사회로, 첨단 기술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질서 속에서 완벽한 항상성을 유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에 과거의 시간관이 유입되면서 소실된 우주론적 가능성이나 또 다른 시간 체계의 병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불러오게 되고 이는 사회에 균열을 가져오게 된다. 달력의 역사에서 태양과 달의 주기 차이를 맞추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던 것처럼, 두 주인공 에른스트 모와 엔 스톰 또한 과거 시간력의 복원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더 넓은 우주와 개체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유도하기 위한 움직임에 가담한다.

작가는 시간성의 감각적 변환을 위해 비서구 문화권의 문명의 도상들을 참고하여 인공지능과 협력해 이야기 속 역법의 도상들을 제작하고, 아시아 전통 별자리를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시화집 『보천가』의 가사를 비롯한 토착적이면서도 전통적인 대사를 통해 동아시아적 감수성을 전면화한다. 이것은 시간과 근대성에 대한 탐구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생성하고 확장하는 아시아의 미래성을 설명하려는 작가의 의도로 이해할 수 있다. 복잡하게 얽힌 시공간의 상황, 공고한 세계에 균열을 내기 위한 시도와 반복되는 실패, 실패함으로써 관계가 지속되는 두 주인공의 운명은 우리가 속해있는 세상 안에 보편타당하게 여기는 시간, 공간, 역사와 같은 조건들이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감각을 일깨운다. 인과성을 무너뜨린 알고리즘, 몽타주 기법을 사용해 파편적이고 사변적인 서사 방식, 감각적으로 변주하듯 드러나는 작가의 재귀적 상상은 하나의 인과성으로 이어지거나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질 수 없는 우리 세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는 소멸된 우주론과 또 다른 시간 체계가 병존하는 가능세계, 그리고 시공간을 흔드는 연출 방식을 통해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시하며 전통과 현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제공한다.

# 스크립트 부분

어떤 인류는 지금과 다른 어떤 미래에, 기후 위기 등과 같은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지반으로 하강하여 자발적 고립을 선택해 살아가고 있다. 반쯤 땅 속에 묻힌 이 세계는 ‘노바리아’라는 이름의 수직적 도시로, 고도의 기술력으로 구축된 매끈하고 광활한 돔형 유리 구체로 구획되어 있다. 이곳은 외부와 차단되어 자족적이고 자율적인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사회이다. 태양광의 영향을 받지 않기에 행성의 주기로부터 자유롭고, 대신, 발광 생물이자 과학기술의 집약체인 ‘루미나’라는 존재의 빛을 광원으로 삼는다. 노바리아의 시간과 달력은 정교하게 제어되는 이 생물의 생식주기에 따라 결정되며, 루미나가 빛을 강하게 발하는 생식 주간인 한 해의 열흘간, 노바리아 최대의 축제가 펼쳐진다.

딜리버리 댄서 앱에 소속된 주인공인 배달 라이더 에른스트 모는 우연히 도시의 하층부에 위치한 세관을 통해 소멸된 과거의 시간관이 담긴 밀수된 유물들을 배달하게 된다. 외부 세계와 표면적으로 차단된 이 도시에 출몰하는 고대의 유물들은 노바리아 세계에 조금씩 균열을 일으킨다.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 2024.

딜리버리 댄서의 구

〈딜리버리 댄서의 구〉, 2022.

작가소개: 김아영

〈김아영〉,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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