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바바뇨냐 : 해항도시 속 혼합문화
취안저우, 꿈꾸는 천년의 불빛
중국 남동부에 위치한 취안저우(泉州)는 내륙을 관통하는 강과 바다가 연결되어 있어 당나라 때부터 무역항으로 성장하였다. 이 도시는 아랍인들이 가져간 비단의 이름과 인도인들이 가져와 도시 전체에 퍼트린 붉은 꽃을 자동(刺桐)이라 부른 데서 유래하여 해외에서는 자이툰(Zaitun)으로 널리 알려졌다.
취안저우는 송나라 시기에 이르러 동북쪽에는 고려의 벽란도, 동남아로는 말라카, 남서쪽으로 인도와 아랍 등 40여개의 항구와 교역하였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에서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맞먹는 ‘동방 제일 무역항’이라 평하였다.
해양교역로의 출발지이자 도착지인 취안저우에는 일찍부터 여러 지역 사람들의 빈번한 왕래로 인해 지금도 문화 공존의 특징을 보여주는 다양한 종교건축들이 남아 있다.
먼저, 당나라 때의 불교사찰로 세워진 지가 1,300년이 넘은 개원사(開元寺)가 있다. 40미터가 넘는 거대한 쌍탑으로도 유명하지만 힌두신 비슈누의 이야기인 ‘사자인간’과 동식물을 표현한 돌기둥 부조가 있어 인도-중국 문화요소의 이채로운 조합과 공간을 초월한 교역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포교를 위해 무함마드가 보낸 현자 4명의 무덤이라는 이슬람 성묘(聖墓),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사원인 청정사(淸淨寺)는 취안저우에 유지되어 온 무슬림 공동체와 이들에 의한 활발한 교역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전통적인 도교와 민간신앙이 결합한 관우묘, 항해를 보살핀다는 마조 여신을 모신 천후궁과 더불어 마니교 및 경교의 흔적, 근현대 시기에 지어진 기독교 천남당과 고딕양식의 화항천주교당도 어우러져 있다. 현대의 취안저우가 ‘세계종교박물관’이라는 표현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 전래된 각기 다른 종교건축물이 수세기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혼합문화를 대하는 취안저우의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이다. 목조건축을 모방한 육승탑(六勝塔)이 사실 불탑이 아니라 이 항구에 도착하는 수백 척 배를 향해 빛을 내뿜는 등대였던 것처럼 취안저우는 바다와 같은 유연함으로 모든 문화를 담아냈다. 유네스코는 아시아 해상교역로의 중심이자 번영을 이뤘던 취안저우의 도시환경적 가치를 인정하여 202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